전체 글252 일한학술문화교류사업, 한국에 방문했던 일본 선생님들과의 만남 어느덧 마지막 일정이다.과거 한국을 방문했던 일본 선생님들과의 간담회였다. 일본 선생님들은 왜 이 사업에 지원하게 되었는지,한국을 방문했을 때 무엇을 느꼈는지,그리고 방문 이후 어떤 변화가 있었는지를 솔직하게 이야기해 주었다.1. 일본 선생님이 이 사업에 참여한 이유와 바뀐 점가장 먼저 이야기를 나눈 선생님은 지난 한국 방문 때 대표 역할을 했다.사업에 지원하게 된 이유는 일본의 교육을 바꾸고 싶다는 마음으로 비롯되었다고 한다.일본 교육의 장점도 많지만, 다른 나라의 교육을 직접 보고 시야를 넓히고 싶었다고 한다. 이 선생님이 한국에서 가장 인상 깊게 본 것은 학교 시설과 교육 환경이었다.ICT 기기, 디지털 기반 수업, 학생들에게 제공되는 다양한 교육 기자재들을 보며 놀랐다고 했다. "아이들에게 돈을 .. 2026. 6. 12. 한일학술문화교류 중 홈스테이 후기 1. 홈스테이 전이번 한일학술문화교류사업에서 가장 기대했던 일정 중 하나는 홈스테이였다.학교 방문도 좋고 연수도 의미 있었지만, 사실 일본 사람들의 실제 삶을 가장 가까이에서 볼 수 있는 기회는 홈스테이일 것이라고 생각했다. 출국 전에는 꽤 상세한 설문지를 작성했다.알레르기 유무건강 상태취미언어 능력일본에서 배우고 싶은 것홈스테이 가족에게 전하는 메시지나는 일본어 회화가 가능하다고 적었고, JLPT N1 자격도 기재했다.취미는 언어 학습과 산책, 새로운 음식 먹기라고 썼다. 또 일본의 문화와 교육을 깊이 경험하고 싶으며, 이번 만남이 앞으로도 지속적인 교류로 이어지기를 바란다고 적었다.홈스테이 가족에게는 일본을 좋아하는 마음으로 꾸준히 일본어를 공부해 왔으며, 이번 기회를 통해 많이 배우고 좋은 추억을 .. 2026. 6. 12. 쓰나미 재해 중 물과 불이 공존했던, 가도와키초등학교 미야기 동북대지진 쓰나미 전승관의 바로 앞에는 가도와키초등학교가 있다. 앞서 방문했던 오카와초등학교와 가도와키초등학교.두 학교 모두 동일본대지진의 피해를 입었다. 하지만 이곳에서 들은 이야기는 오카와초등학교와는 전혀 다른 이야기였다.오카와초등학교가 "왜 아이들을 살리지 못했는가"를 생각하게 하는 장소였다면,가도와키초등학교는 "어떻게 아이들을 살릴 수 있었는가"를 보여주는 장소였다.1. 물과 불이 동시에 덮친 학교 가도와키초등학교는 동일본대지진 당시 쓰나미뿐 아니라 화재까지 겪은 학교였다.지진이 발생했고, 거대한 쓰나미가 밀려왔고, 그 뒤에는 불길이 번졌다. 안내를 맡은 전 교장 선생님은 말했다. "동일본대지진 때 많은 학교가 지진과 쓰나미 피해를 입었습니다.하지만 쓰나미와 화재를 동시에 겪은 학교는 이곳.. 2026. 6. 12. 미야기 동북대지진 쓰나미 전승관이란 쓰나미로부터 전원 사망했던 오카와초등학교.쓰나미로부터 전원 생존했던 이시노마키 진재유구 가도노와키초등학교. 가도노와키초등학교를 방문하기 전, 학교 바로 앞에 있는 미야기 동북대지진 쓰나미 전승관에 먼저 방문했다.동일본대지진이 어떤 재해였는지, 쓰나미가 얼마나 큰 피해를 남겼는지, 그리고 앞으로 우리는 어떻게 행동해야 하는지를 전하는 공간이었다. 이 전시관에서도 마찬가지로 행동을 강조하고 있었다."도망쳐라.""상상보다 더 빨리, 더 높이 도망쳐라."1. 동일본대지진은 어떤 재해였나동일본대지진은 2011년 3월 11일 오후 2시 46분에 발생했다.정식 명칭은 도호쿠 지방 태평양 해역 지진이다. 규모는 매그니튜드 9.0(최대 강도는 10.0).일본 관측 사상 최대 규모의 지진이었고, 세계적으로도 손꼽히는 거대.. 2026. 6. 12. "일단 도망쳐" - 쓰나미 피해를 입은 오카와초등학교에서 이번 오카와초등학교 방문 전 안내에 편한 복장으로 오라는 내용이 적혀 있었다.야외를 오래 걸어야 하기 때문이라고 했다.그래서 나도 편한 옷을 입고 갔다. 하지만 지금 생각해 보면,복장은 편하게 해도 되었지만 마음만은 편하게 해서는 안 되는 시간이었다.1. "왜 이런 곳에 학교를 지었습니까?""왜 이런 곳에 학교를 지었습니까?" 이번 안내를 맡은 분은 사토 도시야(佐藤敏郎) 씨는 오카와 초등학교에 방문한 사람들이 위 질문을 매번 한다고 했다. 사토 씨는 동일본대지진 당시 딸 미즈호(瑞穂)를 오카와초등학교에서 잃은 아버지이자, 당시 인근 중학교에서 근무하던 교사였다. 지진 발생 후 학교를 찾았던 그는 딸의 시신을 직접 수습해야 했다.그 이후 15년 동안 전국을 다니며 오카와초등학교의 이야기를 전하고 있다.「.. 2026. 6. 12. 이전 1 2 3 4 ··· 51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