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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시민교육

쓰나미 재해 중 물과 불이 공존했던, 가도와키초등학교

by 5개 국어하는 너구리 2026. 6. 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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걸어서 6분

 

미야기 동북대지진 쓰나미 전승관의 바로 앞에는 가도와키초등학교가 있다.

 

앞서 방문했던 오카와초등학교와 가도와키초등학교.

두 학교 모두 동일본대지진의 피해를 입었다.

 

하지만 이곳에서 들은 이야기는 오카와초등학교와는 전혀 다른 이야기였다.

오카와초등학교가 "왜 아이들을 살리지 못했는가"를 생각하게 하는 장소였다면,

가도와키초등학교는 "어떻게 아이들을 살릴 수 있었는가"를 보여주는 장소였다.


1. 물과 불이 동시에 덮친 학교

쓰나미인데, 불에 탔다니?

 

가도와키초등학교는 동일본대지진 당시 쓰나미뿐 아니라 화재까지 겪은 학교였다.

지진이 발생했고, 거대한 쓰나미가 밀려왔고, 그 뒤에는 불길이 번졌다.

 

안내를 맡은 전 교장 선생님은 말했다.

 

"동일본대지진 때 많은 학교가 지진과 쓰나미 피해를 입었습니다.
하지만 쓰나미와 화재를 동시에 겪은 학교는 이곳이 유일합니다."

 

재난은 하나씩 오지 않는다.

그 사실을 이 건물 자체가 보여주고 있었다.


2. 학생들은 어떻게 모두 살아남을 수 있었을까

당시 가도와키초등학교에는 약 300명의 학생이 있었다.

이미 하교한 저학년 학생들을 제외하면 224명의 학생이 학교에 남아 있었다.

 

그리고 학교에 남아 있던 학생들은 모두 살아남았다.

전원 생존.

 

"어떻게 가능했을까?"

 

피난 경로

 

교장 선생님은 학생들이 그날 다섯 번의 피난을 했다고 설명했다.

  1. 책상 아래로 숨는 피난.
  2. 운동장으로 나가는 피난.
  3. 히요리야마 공원으로 올라가는 피난.
  4. 더 높은 신사까지 이동하는 피난.
  5. 고등학교까지 이동하는 피난이었다.

위험이 끝났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더 높은 곳으로, 더 안전한 곳으로, 계속 움직였다.

그 결과 모두 살아남을 수 있었다.


3. 아이들을 따라 어른들이 도망쳤다

피난은 학생들만 한 것이 아니었다.

학생들이 산으로 올라가자 학부모들도, 지역 주민들도, 그 뒤를 따라 움직였다.

 

나중에 주민들은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우리가 살아남을 수 있었던 것은 가도와키초등학교 아이들 덕분이었습니다."

 

아이들이 먼저 움직였다. 그리고 어른들이 그 뒤를 따라갔다.

교장 선생님은 이것을 "피난의 연쇄"라고 표현했다.

 

학교에서 실시한 피난 훈련이 학생들을 살렸고, 학생들의 행동이 지역 주민들을 움직였고, 결국 지역 전체의 생명을 살렸다는 것이다.

 

그 이야기를 들으며 학교의 역할은 학교는 단순히 학생만 가르치는 곳이 아니라,

지역 전체의 행동을 바꾸는 곳일 수 있다는 생각을 했다.


4. 유별났던 방재교육

전 교장선생님은 20대 초반, 처음 교사로 발령받았을 때 지진을 경험했다.

당시 미야기현에는 규모 7이 넘는 강한 지진이 발생했다.

 

전 교장선생님은 임신을 한 상태로 집에서 쉬고 있었다.

그런데 갑자기 옷장이 몸으로 넘어졌고, 조명이 떨어졌고, 식기장 속 그릇들이 쏟아졌다.

 

이 순간 전 교장선생님은

"학교에 있었다면 아이들을 어떻게 지켰을까?"

라는 생각을 했다고 한다.

 

그리고 전문가들은 같은 규모의 지진이 언젠가 다시 올 가능성이 매우 높다고 경고했다.

이때부터 전 교장선생님은 방재교육을 단순한 행사가 아니라 교사의 책임이라고 생각하게 되었다.

 

그리고 이후 가도와키초등학교의 교장이 되었을 때, 그 생각을 실제 학교 운영에 반영하기 시작했다.

모두가 환영한 것은 아니었다.

 

실제로 고지대까지 걸어 올라가는 피난훈련을 실시하면 학생들은 힘들어했다.

여름에는 덥고, 훈련에는 시간이 걸렸고, 수업 시간도 줄어들었다.

 

학부모들 가운데서는

"왜 그렇게까지 해야 합니까?"

라는 불만도 나왔다고 한다.

 

교사들 입장에서도 쉬운 일은 아니었다. 매년 같은 훈련을 반복하는 것만으로도 충분하다고 생각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교장 선생님은 멈추지 않았다.

 

"매년 같은 피난훈련만 해서는 안 됩니다."

"아이들이 진심으로 참여할 수 있도록 계속 바꿔야 합니다."

 

그래서 피난훈련도 매년 조금씩 달라졌다.

어떤 날은 실제 대피 경로를 걸어 보았고, 어떤 날은 더 먼 곳까지 이동했다.

단순히 운동장에 모이는 것으로 끝나지 않았다.

정말 위험한 상황이 발생했을 때 몸이 먼저 움직일 수 있도록 만드는 것이 목표였다.

 

그리고 실제 상황이 발생했을 때, 곧바로 행동할 수 있었다.


5. 학교가 가르쳐야 하는 것

강연의 마지막에 교장 선생님은 계속 같은 말을 반복했다.

"아이들에게 살아남는 힘을 길러주어야 합니다."

 

그 힘은 단순히 도망치는 방법을 아는 것이 아니었다.

  • 스스로 판단하는 힘.
  • 상황을 이해하는 힘.
  • 위험을 알아차리는 힘.
  • 행동하는 힘.

학생들은 평생 학교에 머물지 않는다.

언젠가는 학교를 떠나고, 어디에서 어떤 재난을 만날지 아무도 모른다.

 

그때 필요한 것은 지시를 기다리는 사람이 아니라

스스로 판단하고 움직일 수 있는 사람일 것이다.


전승관이 된 장소를 돌아보며

강연의 마지막에 교

당시 이 지역에서 사용됐던 응급 가설 주택

(왼쪽)쓰나미로 반파된 차 (가운데)교장실 (오른쪽)교실

전승관에서 체험한 학생들의 글

 

가도와키초등학교 전승관에는 당시 사용했던 가설주택도 전시되어 있었다.

몇 평 남짓한 공간에 부엌과 화장실, 작은 방이 전부였다.

갑자기 집을 잃은 사람들이 이곳에서 새로운 생활을 시작했다고 한다.

 

한편 전시장 한쪽에는 쓰나미에 뒤집힌 차량도 있었다.

형체를 알아보기 어려울 정도로 찌그러진 자동차를 보며 당시 쓰나미의 위력을 다시 실감할 수 있었다.

 

또 불에 탄 교장실과 교실 사진도 남아 있었다.

검게 그을린 천장, 무너진 벽, 아무것도 남지 않은 공간을 보며 그날 이곳에 있었던 사람들의 공포를 조금이나마 상상해 볼 수 있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이번 방문은 오카와초등학교를 방문했을 때보다 마음이 편했다.

피해가 더 적어서가 아니다.

 

실제로 이 지역 역시 엄청난 피해를 입었다.

학교는 결국 폐교되었고, 마을은 사라졌으며, 사람들은 오랫동안 가설주택에서 생활해야 했다.

 

그럼에도 마음이 조금 달랐던 이유는

이곳에서는 "살아남은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전시장 마지막에는 학생들이 남긴 글과 기록들이 전시되어 있었다.

그 속에는 감사의 마음도 있었고, 앞으로 살아가겠다는 다짐도 있었다.

 

교장 선생님 역시 강연 내내 과거의 비극만 이야기하지 않았다.

오히려 앞으로 학교가 무엇을 해야 하는지, 아이들에게 어떤 힘을 길러주어야 하는지를 계속 이야기했다.

 

재난은 특별한 날에 찾아오지만, 그 재난을 이겨낼 힘은 특별한 날에 만들어지지 않는다.

평범한 학교의 하루하루 속에서 만들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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