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쓰나미로부터 전원 사망했던 오카와초등학교.
쓰나미로부터 전원 생존했던 이시노마키 진재유구 가도노와키초등학교.
가도노와키초등학교를 방문하기 전, 학교 바로 앞에 있는 미야기 동북대지진 쓰나미 전승관에 먼저 방문했다.
동일본대지진이 어떤 재해였는지, 쓰나미가 얼마나 큰 피해를 남겼는지, 그리고 앞으로 우리는 어떻게 행동해야 하는지를 전하는 공간이었다.
이 전시관에서도 마찬가지로 행동을 강조하고 있었다.
"도망쳐라."
"상상보다 더 빨리, 더 높이 도망쳐라."
1. 동일본대지진은 어떤 재해였나
동일본대지진은 2011년 3월 11일 오후 2시 46분에 발생했다.
정식 명칭은 도호쿠 지방 태평양 해역 지진이다.
규모는 매그니튜드 9.0(최대 강도는 10.0).
일본 관측 사상 최대 규모의 지진이었고, 세계적으로도 손꼽히는 거대한 지진이었다.

지도에는 쓰나미가 덮친 지역이 파란색으로 표시되어 있었다.
전승관 설명에 따르면 전국에서 약 2만 명이 사망하거나 실종되었다.
그중 미야기현에서만 1만 566명이 목숨을 잃었고, 1,219명이 실종되었다.
전승관이 있는 이시노마키시에서도 3,552명이 목숨을 잃었고, 420명이 실종되었다.
해설사는 동일본대지진은 아직 끝난 재해가 아니라고. 지금도 실종자를 찾고 있고, 지금도 복구와 회복은 계속되고 있다고 말했다.
*해설사분은 지진 당시 초등학교 1학년으로, 쓰나미 피해가 없는 지역에 있었다고 했다.
2.어마어마한 쓰나미의 높이


미야기현 해안에는 리아스식 해안이 많다.
해안선이 복잡하게 들어가 있고 산과 계곡이 바다 가까이 이어지는 지형이다.
해설사는 이런 지형이 쓰나미를 더욱 위험하게 만든다고 했다.
좁아진 해안으로 물이 밀려 들어오면서 높이가 더 높아지기 때문이다.
전시장에는 지역별 쓰나미 높이가 표시되어 있었다.
그중 가장 눈길을 끈 숫자는 34.7m였다. 무려 아파트 12층 정도의 높이.
쓰나미는 해안에 도달한 뒤에도 끝나지 않는다.
물은 계곡과 지형을 따라 육지 안쪽으로 계속 밀고 올라간다.
이렇게 육지에서 가장 높이 올라간 지점을 '소상고(遡上高)'라고 한다.
쓰나미가 무서운 이유는 높이만이 아니었다. 속도도 있었다.
설명에 따르면 쓰나미는 태평양을 가로질러 하와이까지 약 8시간 만에 도달했다.
약 시속 800km정도로, 비행기와 비슷한 속도이다.
더욱이 쓰나미가 밀려올 때 오는 것은 물만이 아니다.
목조 주택, 자동차, 어선, 나무, 생활용품이 함께 떠내려온다.
집 한 채가 그대로 바다 위에 떠 있는 상태로 밀려오기도 한다.
그런 상황에서 사람은 헤엄칠 수 없다. 피할 수도, 버틸 수도 없다.
해설사는 단호하게 말했다.
"쓰나미와 싸워서는 절대 이길 수 없습니다."
그래서 답은 하나다.
오기 전에 도망쳐야 한다.
3. 왜 사람들은 바로 대피하지 못했을까
동일본대지진 사망자의 약 90%는 익사였다고 한다.
그만큼 쓰나미가 직접적인 피해를 만들었다.
그렇다면 사람들은 왜 바로 대피하지 못했을까.
전승관에서는 내각부 조사 자료를 보여주었다.
지진의 흔들림이 멈춘 뒤 바로 대피한 사람은 약 57%였다.
반면 어떤 행동을 마친 뒤 대피한 사람은 약 31%였다.
그리고 어떤 행동을 하는 도중에 쓰나미가 다가온 경우도 약 11%였다고 한다.
즉, 약 4할의 사람들은 지진 직후 곧바로 대피하지 못했다.
이유는 다양했다.
- 쓰나미 경보가 모든 사람에게 전달되지 않은 경우
- 해저드맵의 예상 침수 구역을 훨씬 넘어선 경우
- 이미 안전하다고 생각한 경우
- 일단 대피했다가 바닷가 상황을 보러 다시 돌아간 경우
- 교통 체증 때문에 이동이 늦어진 경우
- 과거의 경험으로 미루어 짐작한 경우
이중 가장 마음에 남은 것은 과거의 경험으로 미루어 짐작한 것이었다.
이 지역에는 이전에도 쓰나미 경험이 있었다.
그때는 주로 바닥 아래가 잠기는 정도의 피해였다고 한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은 쓰나미를 그 정도로 기억하고 있었다.
상정은 어디까지나 상정일 뿐이다.
자연은 인간의 예상을 넘어설 수 있다. 그리고 실제로 넘어섰다.
이곳에 예상되었던 쓰나미 높이는 30cm 정도였다고 한다.
하지만 실제로 밀려온 쓰나미는 6.9m였다.
4. 쓰나미의 역사

전승관 한쪽 벽에는 쓰나미의 역사가 길게 정리되어 있다.
벽면 가장 위에는 큰 글씨가 적혀 있었다.
「津波はまた必ず襲ってくる」
쓰나미는 반드시 다시 찾아온다.
- 869년 조간지진
- 1611년 게이초 산리쿠 지진
- 1896년 메이지 산리쿠 지진
- 1933년 쇼와 산리쿠 지진
- 1960년 칠레지진 쓰나미
- 1978년 미야기현 해역지진
- 2011년 동일본대지진
동일본대지진은 흔히 "천 년에 한 번 일어나는 재해" 라고 불린다.
869년 조간지진과 비슷한 규모의 쓰나미였기 때문이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천 년에 한 번인가?"가 아니다.
"언젠가는 다시 온다."는 사실이었다.
동일본대지진도 어느덧 15년 가까운 시간이 흘렀다.
그 이후에 태어난 아이들은 그날을 직접 기억하지 못한다.
시간이 지나면 기억은 흐려진다. 그래서 기록하고, 전하고, 다시 이야기해야 한다.
전승관이 존재하는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었다.
5. 방재교육의 핵심은 '어떻게 도망칠지 미리 정하는 것'

「すぐに、より高い所へ逃げる!」
"즉시, 더 높은 곳으로 도망쳐라."
사람은 재난이 발생하면 침착하게 판단하지 못한다.
집이 걱정되고, 가족이 걱정되고, 주변 사람들이 걱정된다.
그래서 잠시만 더 생각하려고 한다. 잠시만 더 확인하려고 한다.
문제는 재난이 그 시간을 기다려주지 않는다는 점이다.
전승관에서는 과거 대지진 생존자들의 증언도 소개하고 있었다.
집을 정리하다가, 주변을 살피다가, 가족을 찾으러 갔다가, 대피가 늦어진 사례들이 반복해서 등장했다.
결국 중요한 것은 재난이 발생한 뒤의 판단이 아니라, 재난이 발생하기 전에 정한 행동 지침이었다.
- 어디로 갈 것인가.
- 누구를 기다릴 것인가.
- 연락이 안 되면 어떻게 할 것인가.
- 가족은 어디서 만날 것인가.
- 학교는 어디로 대피할 것인가.
전승관은 이것을 지역사회, 학교, 가정이 함께 준비해야 한다고 설명하고 있었다.
재난이 발생한 뒤에 결정하는 것이 아니라, 재난이 발생하기 전에 결정해 두는 것.
생각해 보면 이것은 오카와초등학교에서 들었던 이야기와도 정확히 같았다.
6. 이것은 쓰레기가 아니라 누군가의 삶이었다

전승관에는 동일본대지진 전후의 사진도 있었다.
쓰나미가 지나간 뒤 남은 것은 잔해였다.
해설사는 원래 이것은 쓰레기가 아니었다고 했다.
누군가의 집이었고, 누군가의 재산이었고, 누군가의 추억이었다.
그 말을 듣고 나니 사진 속 잔해가 다르게 보였다. 무너진 건물이 아니라, 사라진 생활이었다.
누군가가 매일 사용하던 물건이었다.
재난을 숫자로만 보면 잘 느껴지지 않는다.
- 사망자 수
- 실종자 수
- 침수 면적
- 쓰나미 높이
하지만 그 숫자 뒤에는 한 사람 한 사람의 삶이 있었다.
7. 위에 미처 담지 못한 내용들






전승관 관람의 마지막에는 현재의 미나미하마 지역을 둘러보았다.
한때 수많은 사람들이 살던 곳이다. 하지만 지금은 넓은 공원이 되어 있었다.
이곳에는 원래 집이 있었다. 골목이 있었다. 아이들이 뛰어놀던 길이 있었다.
마을에 있던 식물들을 다시 심기 위한 공간도 있었다.
새로운 공원을 만드는 것이 아니라, 예전 마을의 풍경을 조금이라도 이어 가려는 노력이 느껴졌다.
전승관을 조성하는 과정에서는 국가와 지자체는 주민들에게 보상을 하고 토지를 매입했다고 한다.
마지막으로 추모비를 보았다. 수많은 이름이 새겨져 있었다.
설명에 따르면 유족들의 동의를 받아 모든 사망자의 이름을 기록했다고 한다.
그런데 자세히 보니 이름이 적혀 있지 않은 명패들도 있었다.
궁금해서 이유를 물어보니 행방불명자를 의미한다고 했다.
아직 가족들은 그들이 죽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고. 어딘가에서 살아 돌아오기를 기다리는 마음을 담아 이름 대신 빈 명패를 남겨 두었다고 했다.
동일본대지진은 2011년에 일어났다. 이미 많은 시간이 흘렀다.
하지만 누군가에게는 아직 끝나지 않은 재해라는 사실을, 그 빈 명패가 조용히 말해 주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