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오카와초등학교 방문 전 안내에 편한 복장으로 오라는 내용이 적혀 있었다.
야외를 오래 걸어야 하기 때문이라고 했다.
그래서 나도 편한 옷을 입고 갔다.
하지만 지금 생각해 보면,
복장은 편하게 해도 되었지만 마음만은 편하게 해서는 안 되는 시간이었다.
1. "왜 이런 곳에 학교를 지었습니까?"
"왜 이런 곳에 학교를 지었습니까?"
이번 안내를 맡은 분은 사토 도시야(佐藤敏郎) 씨는 오카와 초등학교에 방문한 사람들이 위 질문을 매번 한다고 했다.
사토 씨는 동일본대지진 당시 딸 미즈호(瑞穂)를 오카와초등학교에서 잃은 아버지이자, 당시 인근 중학교에서 근무하던 교사였다.
지진 발생 후 학교를 찾았던 그는 딸의 시신을 직접 수습해야 했다.
그 이후 15년 동안 전국을 다니며 오카와초등학교의 이야기를 전하고 있다.
「でも、ここには町がありました。」
"하지만 이곳에는 마을이 있었습니다."


지금의 오카와초등학교는 폐허처럼 보인다.
학교 건물은 무너져 있고, 주변에는 집도 거의 남아 있지 않다.
우리는 현재의 풍경을 보고 과거를 판단한다.
하지만 이곳은 원래부터 재난 지역이 아니었다.
150여 가구가 살고 있었고, 아이들이 운동회를 했고, 벚꽃이 피었고, 학생들이 자전거를 타고 뛰어놀던 평범한 마을이었다.
사토 씨는 계속해서 말했다.
지금 보이는 폐허를 보지 말고, 그날 이전의 풍경을 상상해 달라고.
그 순간 오카와초등학교는 '재난 유적지'가 아니라,
누군가의 일상이 사라진 장소가 된다.



2. 특별한 실패가 아니라 누구에게나 일어날 수 있는 일
- 학생 74명 사망
- 학생 4명 실종
- 교직원 10명 사망
- 교직원 1명 생존
많은 사람들은 오카와초등학교를 보며 생각한다.
"무언가 엄청난 실수가 있었겠지."
하지만 사토 씨는 오히려 정반대의 이야기를 했다.
지진이 발생했다.
2011년 3월 11일 오후 2시 46분.
그리고 쓰나미는 약 51분 뒤 도착했다.
전혀 시간이 없었던 것은 아니었다.

학교 바로 뒤에는 산도 있었다.
학생들은 평소에도 올라가던 산이었다.
실제로 일부 학생들은 "산으로 도망가자" 고 이야기했다고 한다.
하지만 결정은 늦어졌다. 논의는 길어졌다. 행동은 이루어지지 못했다.
사토 씨는 교사들을 비난하지 않았다.
오히려 이렇게 말했다.
「子どもを助けたくない先生はいません。」
아이를 살리고 싶지 않은 교사는 없습니다.
그 역시 교사였다. 그리고 딸을 잃은 아버지였다.
그래서 당시 교사들이 어떤 마음이었는지 누구보다 잘 이해한다고 했다.
여진은 계속되고 있었고, 아이들은 울고 있었다. 선생님들은 아이들을 진정시켜야 했다.
아마도
"괜찮아."
"걱정하지 마."
라고 말하며 아이들을 다독였을 것이다.
사토 씨가 안타까워한 것은 바로 그 지점이었다. 재난이 발생한 뒤에 무엇을 할지 결정하고 있었다는 점이다.
어디로 갈 것인가. 언제 움직일 것인가. 누가 결정할 것인가는 재난이 발생한 뒤가 아니라 그 이전에 끝나 있어야 했다.
실제로 학교 바로 뒤에는 산이 있었다. 학생들이 평소에도 올라가던 산이었다. 그곳까지는 몇 분도 걸리지 않았다.
사토 씨는 말했다.
만약 그날 산으로 올라갔다면 모두 살 수 있었다고.


하지만 학생들은 줄을 섰다. 좁은 길을 따라 1열로 이동했다.
마지막 순간, 거대한 쓰나미를 본 교사들은 무엇을 생각했을까.
사토 씨는 자신이 그 자리에 있지는 않았지만 알 것 같다고 했다.
교사들은 그 순간 깨달았을 것이다. 아이들을 더 이상 지킬 수 없다는 것을.
그래서 아이들을 끌어안았을 것이라고.
그것밖에 할 수 있는 일이 없었을 것이라고.
사토 씨는 당시 상황을 설명하며 이런 말을 했다.
「山は命を救わない。行動が命を救います。」
산이 생명을 구하는 것이 아니다. 행동이 생명을 구한다.
그래서 사토 씨의 울분은 교사 개인을 향한 것이 아니었다.
아이들을 사랑했던 교사들에게 그런 선택을 하게 만든 준비 부족.
그리고 재난이 오기 전에 결정하지 못했던 우리 모두를 향한 질문이었다.
3. "사람을 진짜 움직이는 것은 희망이다"
보통 방재교육은 공포를 이야기한다.
지진이 얼마나 무서운지, 쓰나미가 얼마나 위험한지, 재난이 오면 어떻게 되는지를 이야기한다.
하지만 사토 씨는 다른 이야기를 했다.
「人を本当に動かすのは希望です。」
사람을 진짜 움직이는 것은 희망이다.
「防災は恐怖や悲しみのためにやるのではない。」
방재는 공포와 슬픔을 위해 하는 것이 아니다.
「みんなで助かって、みんなで喜ぶためにやるんです。」
모두가 살아남고, 모두가 함께 기뻐하기 위해 하는 것이다.
74명의 아이들이 희생된 장소에서 들은 말이기에 더욱 무겁게 다가왔다.
그는 우리를 슬프게 만들기 위해 이 이야기를 하는 것이 아니었다.
오히려 미래에 누군가를 살리기 위해 이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4. 미래를 여는 "오카와초등학교"

「未来を拓く」
미래를 연다.
재해가 있기 전, 오카와 초등학교의 교육목표였다고 한다.
많은 사람들이 오카와초등학교를 보며
"슬픈 곳"
"안타까운 곳"
이라고 말한다.
하지만 사토 씨는 우리에게 부탁했다.
「大川小学校はどんな学校でしたかと聞かれたら
오카와초등학교가 어떤 학교였냐고 묻는다면,
『未来を拓く学校でした』と答えてください。」
"미래를 여는 학교였습니다."
오키와초등학교에 대해 누군가 묻는다면 이렇게 대답해 달라고.
희생은 되돌릴 수 없다. 미즈호도 돌아오지 않는다. 74명의 아이들도 돌아오지 않는다.
하지만 이 이야기가 누군가의 행동을 바꾸고,
누군가의 판단을 바꾸고,
누군가의 생명을 살릴 수 있다면,
그것은 미래를 여는 일이 될 수 있다.
5. 맺으며
「子どもを助けたくない先生はいません。」
아이를 살리고 싶지 않은 교사는 없습니다.
사토 씨는 끝까지 교사들을 비난하지 않았다.
오히려 이해하려고 했다.
하지만 동시에 이렇게 말하는 것처럼 들렸다.
"그래서 우리는 더 준비해야 한다. 그리고 행동해야한다"
「まず逃げろ」
일단 도망쳐라



추가자료
https://www.youtube.com/watch?v=LaKuGyCtdjo
사토 씨의 딸 미즈호(瑞穂)에게는 언니가 있었다.
사토 소노미(佐藤そのみ) 씨이다.
미즈호씨는 여동생을 잃은 경험을 바탕으로 영화 『春をかさねて』를 만들었다.
직역하면 "봄을 거듭하며"라는 뜻이다.
이 영화를 정말정말 보고 싶었지만, 별도로 스트리밍되고 있지는 않다...